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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7.07 유령 1/ 이영광 by 구름따라

 유령 1


    이영광



   이것은 소름끼치는 그림자,

   그림자처럼 홀쭉한 몸

   유령은 도처에 있다

   당신의 퇴근길 또는 귀갓길

   택시가 안 잡히는 종로2가에서 무교동에서

   당신이 휴대폰을 쥐고

   어딘가로 혼자 고함칠 때,

   너무도 많은 이유 때문에 마침내 이유 없이 울고 싶어질 때

   그것은 당신 곁을 지나간다

   희망을 아예 태워버리기 위해 폭탄주를 마시며 당신이

   인사불성으로 삼차를 지나온 순간,

   밤 열한시의 11월 하늘로 가볍게

   흩어져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순간

   당신에겐 유령의 유전자가

   찍힌다, 누구나 죽기 전에 유령이 되어

   어느 주름진 희망의 손에도 붙잡히지 않고

   질척이는 골목과 달려드는 바퀴들을 피해

   힘없이 날아갈 수 있다

   그것이 있는 한 그것이 될 수 있다

   저렇게도 깡마르고 작고 까만 얼굴을 한 유령이

   이 첨단의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니

   쉼 없이 증식하고 있다니

   그러므로 지금은 유령과

   유령이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몸들의 거리

   지하도로 끌려들어가는 발목들의 어둠,

   젖은 포장을 덮는 좌판들의 폭소 둘레를

   택시를 포시한 당신이 이상하게 전후좌우로

   일생을 흔들면서 떠오르기 시작할 때,

   시든 폐지 더미를 리어카에 싣고

   까맣게 그을린 늙은 유령은 사방에서

   천천히,

   문득,

   당신을 통과해간다


   * 시집『아픈 천국』에서/ 2010.8.30 (주)창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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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광/ 경북 의성 출생, 1998『문예중앙』으로 등단

Posted by 구름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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